음악 취향만큼 한 사람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겉모습은 사실 한 사람의 캐릭터를 제대로 드러내주지 않는 경우가 많죠. 우리는 꽤 많은 경우 사람을 알아가면서 첫인상과 다른 의외의 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음악은 피상적이지만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 사람의 캐릭터와 그가 추구하는 (또는 가장 만족스럽다고 느끼는) 세상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대외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거나 지키기 위해 취향을 속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죠. (웃음) 한 사람이 오랜 기간 즐겨 들어온 노래들에서는 어느 정도 공통된 결을 느낄 수 있고 이는 그 사람이 추구하는 세계의 색감, 이미지, 성격과도 결을 같이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음악 취향을 묻는 것, 좋아하는 노래를 묻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사적인 영역의 질문이 될 수 있고 때문에 그 사람을 더 이해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또 생각보다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게 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최근 숨어 듣는 명곡이라는 '숨듣명'이라는 말이 유행했었죠. 내가 따로 표방하고 싶은 이미지가 있을 수도 있고, 대중적으로 인식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노래나 장르를 좋아하면 괜한 비난이나 'judge'를 당할 것을 우려해서기도 합니다.
음악을 듣는 이유 또한 저마다 다양합니다. 시간대나 감정상태에 따라서도 고르는 음악은 달라집니다. 음악은 그 어떤 것보다도 빠르게 한 사람의 기분상태(무드)를 바꿔줍니다. 슬픈 노래를 들으면 갑자기 울적해지고, 리듬감이 있는 노래를 들으면 에너지가 나기도 하죠.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할 때는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듣기조차 어려워 연주곡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노래를 고심해서 고르는 것도,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가 될 수 있는 노래를 찾아보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음악은 처음 그 곡을 들었던 때나 그 노래를 많이 들었던 시기의 추억을 다층적으로 저장하고 있습니다. 10대 청소년기에 주구장창 들었던 노래들을 30대가 된 지금 들어보면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품었던 감정들이 떠오릅니다. 사춘기 혼란스러웠던 감정상태를 풀어주는 록 음악을 꽤 들었는데, 지금 들으면 다소 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웃음) 또 남편과 함께 뉴욕 여행을 갔을 때 블루노트 재즈클럽(Blue Note Jazz Club)에서 처음 알게 된 재즈 뮤지션과 그의 곡들도, 시간이 지난 후 들으면 비 내리던 가을 뉴욕 여행을 떠올리게 합니다. 단편적인 이미지뿐 아니라, 그 당시 공간을 매우던 대화와 소음과 공기의 촉감까지도 떠오르게 합니다.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떠올리는 것과 달리 정서와 공간감이 담겨있는 셈이죠.
저는 음악을 들으면 아주 짧은 여행을 다녀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순식간에 내 뒤로 흐르는 배경음악이 달라지면서, 현실을 떠나 노래가 안내하는 세계로 들어간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특히 그 몰입도가 강한 곡들이 있지요. 특정 시대와 감수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곡들이 그렇습니다. 클래식, 재즈, 올드팝, 시티팝의 곡들을 들을 때 특히 이런 경험을 많이 하게 되더군요. 그렇게 짧게 현실을 잠깐 떠나 아티스트가 보여주는 세계를 방문하고 오면 시대와 공간을 넘나든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되고, 이러한 경험은 꽤나 황홀합니다.
오늘은 제가 많이 좋아하는 여성 뮤지션 로페이 Laufey와 이 아티스트의 노래 'Valentine'과 'Let you break my heart'를 소개하려 합니다. 원래 재패니스 브렉퍼스트 Japanese Breakfast의 미쉘 자우너 Michelle Zauner까지 함께 소개해드리려고 했지만,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재패니스 브렉퍼스트는 다음 포스팅에 다뤄보겠습니다. 이 두 아티스트의 굳이 공통점이라면 최근 2~3년 동안 주목받는 아티스트라는 점, 젊고 동양 혼혈이라는 점, 자신의 음악 색이 뚜렷하다는 점, 미모까지도 출중하다는 점을 뽑을 수 있겠네요. 이 포스팅은 팬의 덕질용, 최애(?)를 소개하는 글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웃음)
로페이 Laufey는 최근 3년째 인기를 얻고 있는 싱어송 라이터로 재즈팝 Jazz Pop과 베드룸팝 Bedroom Pop이 섞인 '모던 재즈'를 하는 음악가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잠깐 용어 하나를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베드룸팝 Bedroom Pop은 음악계의 신조어로 많은 분들에게 낯선 용어일 것 같습니다. 아티스트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악기를 사용해 만드는 몽상적이고 노스탤직 한 nostalgic (향수를 일으키는) 음악의 장르를 말하는데요. 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아티스트들은 여러 장비나 음악작업을 할 공간이 따로 없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기타나 건반 등으로 침실/방에서 만들어내는 곡들, 또는 만들어질 법한 곡들이기에 베드룸팝이라고 부릅니다.
로페이 Laufey는 인종적으로는 아이슬란드(아빠)와 중국(엄마)의 혼혈이고 1999년생으로 이제 갓 20대 중반이 된 어린 아티스트입니다. 2021년 미국 버클리 음대를 졸업한 후 현재는 LA에 거주 중이라고 합니다. 쌍둥이 자매가 있고 아이슬란드와 미국 워싱턴 D.C에서 자랐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엄마와 바이올린 선생님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이었는지, 아이슬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첼로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데에도 능통하다고 합니다.
데뷔 EP(미니앨범) 'Typical of me'을 2021년에 발매, 2022년 데뷔 앨범 'Everything I know about love'을 내고 특별한 무명기간 없이 인기를 얻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낮고 허스키한 음색으로 재즈풍의 향수가 느껴지는 한 사랑스러운 노래들을 부르는 데 이 면이 상당히 개성적이고 매력적입니다. 사용되는 악기들이 단출한 것에 비해 올드팝의 정서가 느껴지는 것은 특유의 노스탤직 한 멜로디 덕분일까요? 로페이는 올해 아이슬란드 교향악단과 함께 A night at the Symphony라는 앨범을 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이번 앨범을 자신이 어린 시절 솔리스트로 활동한 "자신을 키워준" 교향악단과 함께 공동작업을 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사운드와 로페이의 낮고 부드러운 음색과 사랑스러운 음악 스타일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오케스트라와 작업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옛 디즈니 애니메이션 ost를 듣는 것만 같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로페이 Laufey의 Valentine은 작년(2022년) 발매된 첫 번째 앨범 'Everything I know about love'의 수록곡으로 사랑에 처음 빠진 아가씨의 섬세한 감정들을 담아낸 노래입니다. 처음 접한 사랑이 낯설어지만 또 설레고 그렇게 기분 좋은 혼란스러움을 겪으며 사랑에 푹 빠지게 되는 어린 아가씨의 이야기입니다. 원곡은 재즈와 베드룸팝이 섞였다는 로페이 특유의 모던재즈답게 적은 악기를 사용해 봄바람처럼 가볍고 서정적이면서도 재지 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면서도 로페이의 낮고 공기가 많이 섞인 듯한 음색이 어느 정도 깊이감을 더해줍니다. 원곡도 정말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 최근에 아이슬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Iceland Symphony Orchestra와 협연한 버전의 Valentine을 더 좋아합니다.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들이 엮어내는 풍부하고 황홀한 사운드가 이 노래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이 버전을 들었을 때 1980년대 이전에 제작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필름(신데렐라, 피터팬,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의 OST가 재즈풍으로 풀어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올드팝과 위트 있는 재즈의 만남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올드팝과 오래된 디즈니 OST를 평소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취향에 잘 맞을 거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 추천드리는 곡은 'Let You Break My Heart Again'으로 로페이 Laufey와 영국의 대표적인 오케스타라인 필하모니아 관현악단 Philharmonia Orchestra이 함께 작업한 곡입니다. 이별 후 아직 사랑하는 상대를 잊지 못하고 상처를 주는 이 사랑을 끝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은 혼자서라도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담은 곡입니다. 이별을 해봤거나 짝사랑을 해본 분들은 공감하고 위로받으며 들을 수 있는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Valentine과 다르게 이별 노래이기 때문에 좀 더 차분하고 멜랑꼴리 한 무드입니다만, 오케스트라의 화음이 아주 사랑스럽고 황홀하게 스며들어 두 조화가 아름답습니다. 클래식곡처럼 클라이맥스 부분으로 전개되는 부분이 아주 수려하고 드라마틱합니다.
이 두 곡 외에도 로페이의 노래들은 좋은 곡들이 정말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재즈팝과 베드룸팝이 섞인 모던재즈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가볍고 서정적이지만 위트 있는 곡들이 대다수입니다. 곡들의 결도 호불호가 크지 않은 스타일이라 어렵지 않고 대중적인 취향에 잘 부합하는 편입니다. 'Like the movie', 'Beautiful Stranger', 'Best Friend', 'I wish you love' 등 다른 곡들도 정말 좋으니 한 번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오늘은 현재 주목받는, 트렌디한 아티스트 로페이 Laufey와 그녀의 노래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추천드린 곡들은 아침을 부드럽게 시작할 때도, 오후에 기분 좋은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도, 늦은 밤 휴식을 취할 때도 모두 추천하는 곡입니다. 부디 아끼는 곡이 되어 플레이리스트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포스팅에는 재패니스 브렉퍼스트 Japanese Breakfast의 미쉘 자우너 Michelle Zauner와 그녀의 곡들을 소개해드릴 테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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